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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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02 06:32 조회2,466회 댓글0건본문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전 12:1-10)
‣ 2017년에는 제 2의 RUTC운동이란 제목을 받았다. 먼저 렘넌트 그리고 세계 복음화이다. 이부분에 있어서 중요한 응답을 주실 것이다.
▶ 얼마 전 욥에 대한 말씀을 보았다. 동방에서 최고가는 자였고 믿음의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단을 허락했다. 육신의 것을 다 가져가게 했지만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대단한 신앙 고백을 했다. 그러나 그도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가장 밑에 숨겨두었던 영적 문제를 발견했고 그 후에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했다. 아마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부터 하나님이 욥을 더 많이 축복하셨다. 그 전에는 옆길로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마음껏 축복하지 못하셨을 것이지만 그 후로는 마음껏 축복하셨다. 그 때부터 욥이 드리는 모든 제사는 참 제사가 되었을 것이다. 진심을 쏟은 제사가 저절로 되었을 것이다. 전에도 그는 동방의 의인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100세에 아들을 낳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은 전능하시구나. 정말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는구나.” 하나님이 중요한 약속을 하셨다.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열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사람이 네 씨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다.”
▶ 많은 분들이 언약기도문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건 출발이다. 하나님 앞에서 진짜 약해지고 무릎 꿇게 하기 위한 시작이다. 내 속에 있는 교만을 꺾을 수 있는 답을 주셨는데 그것이 그리스도이고 언약이다. 우린 굉장히 힘이 들 때가 있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하소연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하소연을 하면서도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 고난의 뒤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뒤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있어야 한다. 자신을 돌아보며 말씀을 세밀하게 보면서 그걸 적고 읽고 기도하는 작업을 계속 해야겠다.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답을 순간적으로 주시기 때문이다.
1. 약한대서 온전하여 짐이라.
▶ 하나님께서 당신의 최고의 종 사도 바울에게 주신 말씀이다. 정말로 말씀은 역사하는가?
고후 12:9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거짓 선지자들 때문에 아주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쓴 글이다. 당시에는 사도바울보고 사도가 아니라고 말 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비난하고 거짓말 하고 메시지를 자꾸 희석 시키는 것이다. 이런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던 때이다.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찌어다.
▶ 그는 사도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복음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런 말을 해야 할 정도로 공격을 받았다. 그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들고 온다. 행위에 대한 것을 들고 와서 자꾸만 비교를 하는데 그 상대는 초신자들이니 기준이 없다. 복음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러니 사도바울이 아주 답답한 것이다. 참 힘이 들었다. 그러니 기도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다. 사도바울 서신 곳곳에 보면 내가 눈물로 기도한다는 말이 많이 있다. 말로는 안 되었던 것이다.
고후 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같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 하였으니”
▶ 자지 못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사도바울은 이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신성한 사도직을 이런 육신적인 것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았는데 상대가 하도 저속하게 초등학생 수준으로 나오니까 어쩔 수 없이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없는 말을 한다고 했다.
▶오늘 이야기도 나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뽑은 사도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셋째 하늘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후 12:1에 보면 내가 ‘부득불’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이야기 한다는 말이다. 어떻게 참된 믿음을 가진 자가 이런 자랑을 하겠느냐 참 부끄럽다. 하는 뜻이다.
▶ 사도 바울은 받은 계시가 지극히 크므로 자고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탄의 가시를 허락하시고 사도 바울은 그것을 제거해 주시라고 간절히 3번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시면서 더 이상 기도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다.
▶ 앞에서 예를 들은 욥이나 아브라함과 꼭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높아져있을 때가 아닌 낮아져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무한한 능력이 우리 안에서 온전하여 진다면 우린 인생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재창조의 능력이다. 이건 언제 일어나는가? 항상 내가 종이 되고 하나님이 주인 될 때 일어난다. 쉬우면서도 쉽지 않다. 이건 굉장한 비밀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말로 계획 있는 자에게 이렇게 만들어주실 것이다.
▶ 우린 거의다 보면 주인이 바뀌어있다. 하나님이 주인되셔야 한다. 이런 원리를 따라서 사도바울에게 가시를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참 된 종으로 쓰시기 원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를 정말로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니 더 이상 기도하지 말라고 했다. 사도바울에게도 훨씬 더 좋은 것이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했다. 자신에게 가시가 있는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그 가시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진짜 알았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러 있게 하려 함이구나.’ 사도바울은 이것을 기뻐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도바울은 정말 귀한 사람이다. 정말 은혜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해 자기 어려움이나 고난을 오히려 기뻐한다고 했다. 대게의 경우 다 싫어한다. 부끄럽게 생각한다. 사역자들은 이게 내 사역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만 해결되면 마음껏 뛰겠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게 아니란 말이다.
▶ 사도바울과 우리의 차이는 삼층천이 아니다. 거기 가고 말고의 차이가 아니라 우리 마음과 생각의 차이이다. 그만큼 사람이 다른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사도바울과 우리의 차이일 것이다. 여기서 모든 것이 다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죽는 것은 죽는 게 아니다. 우린 죽으면 사는 존재이다. 그런 언약이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서 나를 죽이면 하나님은 내 인생을 살릴 것이다. 그래서 네가 약한데서 내 능력이 온전하여 짐이라. 라고 하신 말씀을 증명해 주실 것이다.
▶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굉장히 억울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회이다. 나를 죽이고 하나님과 깊이 소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거기서 참된 답을 찾게 될 것이다. 이건 절대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다. 고난은 축복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 언약 잡고 도전하면 하나님은 항상 문제를 축복으로 역전시켜주신다. 이것은 성경의 결론 중 결론이다. 절대 낙심하지 말고 언약잡고 기다리기 바란다.
▶ 나를 약하게 하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바란다. 내가 안 되게 하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란다. 어떤 분이 쓴 책이 있었다. 문제가 왔는데 감사하라는 논리이다. 문제를 해결 해달라는게 아니라 문제 주셔서 감사하다는 것이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어느 날 우리에게 욥 같은 시간표를 주실 것이다. 그 모든 고난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꾸는 시간표가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마 16:24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너를 부인하고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 우리의 힘은 여기에 있다. 나를 죽이면 하나님은 내 인생을 살리실 것이다. 이런 중요한 비밀을 깨닫고 눈이 열리는 한 주가 되기 바란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다. 우릴 축복하기 원하신다. 이 주간 마음깊이 오늘 주신 말씀이 언약되기 바란다. 2017년 우릴 축복해주실 줄 믿는다. 하나님께 최고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