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라 (Forg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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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1-15 15:10 조회1,351회 댓글0건본문
용서하라 (마태복음 18:21-35)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복음 중심으로 움직이십니다. 그래서 역사도 복음의 방향에 따라 결정됩니다. 사도 바울의 드로아에서의 꿈은 지구의 역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Turning Point가 되었습니다. 바울에게서만 일어난 현상이 아닙니다. 모세에게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그것을 현장에 전달하기 시작하였을 때부터 그 지역의 역사는 전부 모세가 가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모든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그것이 당시의 역사가 되었고, 아무도 그 흐름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이 모든 인간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부 하나님의 손 안에 다 있고, 그 기준은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선택한 자들은 전부 결정적인 인생 역전이 있었습니다. 라합도 에스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스더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하였다면 하나님은 다른 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셨을 것이고, 에스더는 단순한 왕비의 인생을 살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복음을 기준으로 세상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따르면 우리도 그들처럼 이 시대 하나님의 운동의 주역이 될 것 이며, 우리 인생에는 대역전이 있을 것입니다.
1. 용서하라
1) 오늘 본문은 일만 달란트의 빚을 진 자가 주인으로부터 탕감을 받았으나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자를 용서하지 않는 것을 보고 주인이 그 악한 종을 감옥에 가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너희도 용서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그런데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본문은 구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만 달란트 빚은 원죄로 생각해도 상관없을 것이고, 그 빚을 탕감해 주신 분은 임금이니 하나님으로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3) 그 정도의 빚을 탕감 받은 자체는 원죄를 탕감 받은 것으로 해석해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구원에 대하여 말씀하는 것으로 해석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4) 그렇게 탕감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자기에게 빚진 자는 용서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인이 다시 감옥에 가두어 버렸고, 다시 빚을 다 갚으라고 했습니다.
5) 이것은 구원의 원리와는 다릅니다. 한 번 용서하신 것은 영원히 용서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은 이후에 육신적인 행위의 잘못으로 인하여 받은 구원이 취소가 되고, 다시 지옥으로 가고, 그 모든 빚을 다시 갚아야 하는 일은 없습니다
6)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변함이 없으십니다. 존재에 대하여만 그런 것이 아니고, 뜻이나 결정에 대하여도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절대 무엇이 바뀌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7) 인간의 구원은 창세전에 결정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이 택하사 구원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왜 그러셨는가 하면 그냥 하나님이 기쁘셔서 그렇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엡1:3-5).
8) 그리고 에서와 야곱은 이미 태중에서 결정이 났습니다. 롬9:11 악한 행동이든 선한 행동이든 사람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구원이 결정되었다는 뜻입니다(롬9:11).
9) 그러므로 나중에 일어난 육신적 행위에 의하여 용서가 번복이 된 본문은 구원에 관한 이야기로 받을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구원 받은 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네가 절대로 갚을 수 없는 죄를 용서함 받았으니 너도 용서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너를 용서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10)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이 체험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있으면 우리 마음이 편하지 않으나 용서하고 내려놓으면 우리 마음에 평안을 주셔서 나도 너를 용서하셨다는 Sign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11)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 때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너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이웃을 용서하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용서를 누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2. 영력
1) 우리에게는 용서할 힘이 필요합니다. 인간을 넘어서고, 나의 동기나 욕심을 꺾고, 세상의 욕구를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2) 우리가 사람을 용서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시고, 그 하나님의 용서가 우리에게 임할 때는 그것이 우리에게 또 다른 힘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계속 용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또 다른 힘을 계속 받을 것입니다.
3) 그래서 우리는 아예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 용서해 버리고, 하나님께 다 맡기고, 언약을 잡고 사는 것입니다. 나를 죽이면 동기가 사라지고, 욕심 때문에 오는 섭섭하고 분한 생각이 무너집니다.
4) 상처가 깊은 자는 용서를 잘 하지 못합니다. 뻔히 알면서도 마음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주위의 많은 이해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입니다. 우리는 깊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들이 다 되어야 할 것입니다.
5) 그러나 자신의 영적 상태를 유지하기에도 힘이 드는 분들도 있습니다. 서로 서로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받으려고만 생각을 해서도 안 되고, 이웃의 어려움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도 바른 자세는 아닙니다.
6) 우리는 모두 일만 달란트의 죄를 탕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조금만 자세를 달리하고 서로 이해해도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위에 용서하고, 축복하는 우리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7) 우리는 북미주 산업인 대회에서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10가지 응답에 한 것인데, 그 첫 번째가 언약을 가진 자는 독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약을 알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8) 이만큼 언약이 중요하고, 언약을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누림으로 우리는 영적 독립을 할 수 있고, 그 힘으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일을 다 넘어 갈 수 있습니다. 하찮은 인간에게 내가 잡혀 있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9) 매일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언약의 단을 쌓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이 독립의 시간표를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 독립을 하면 모든 부분에서 여유를 갖게 되고, 일어나는 일이나 사람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10) 용서는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힘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 힘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이것으로 우리 인생의 모든 육신적인 일을 해결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 입니다.
11)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정시로 시간을 정해 놓고 언약을 누리고, 힘을 얻고, 또 무시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힘을 얻는 24시를 누리고, 그러면 당연히 찾아 올 25시의 축복을 우리 모두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주간에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